2016년 개봉한 영화 《곡성》은 장르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서사와 강렬한 메시지로 많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입니다. 겉으로는 미스터리와 스릴러, 공포 요소가 어우러진 복합 장르의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분명하고 단단한 감정의 축이 있습니다. 바로 '부성애'입니다. 한 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무력한 인간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공포와 고통, 그리고 선택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룹니다. 감독 나홍진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본능과 신앙, 의심과 믿음이 어떤 방식으로 충돌하는지를 탁월하게 그려냈습니다.
부성애로 시작되는 이야기, 모든 공포의 시작점
주인공 종구는 시골 마을의 평범한 경찰입니다. 그는 사건 현장에 늦게 도착하고, 범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불안에 휩싸인 주변의 분위기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일상이 무너지는 순간은, 다름 아닌 자신의 딸 효진이 이상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영화는 이 지점부터 전개 속도를 높이며, 종구의 감정과 시선에 관객을 몰입하게 만듭니다. 딸의 변화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은 혼란스럽고 절박하며, 무엇보다 진실을 찾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가득합니다.
그는 처음에는 외지인의 존재를 의심하고, 이후 무속인을 불러 굿을 벌이기도 하고, 다시 성경적 상징 속 인물인 여성과 일본인을 대치하는 구도로 이동합니다. 이 일련의 흐름은 비논리적이지만, 매우 현실적입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기 위한 아버지의 본능은 종교, 미신, 상식, 제도 모두를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종구는 '무엇이 옳은가'보다 '무엇이 딸을 살릴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행동하며, 이는 부성애라는 감정의 진폭을 강하게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혼돈과 두려움의 정체, 믿음과 의심의 사이에서
《곡성》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계속해서 의심하고 질문하게 만듭니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종교적 상징과 해석이 등장합니다. 굿과 무속, 가톨릭, 성경의 인물과 대사, 죽음과 부활, 선과 악이 뒤섞이며, 보는 이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들은 단순한 장치로 그치지 않고,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믿음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종구는 처음에는 무속을 믿지 않지만, 점점 상황이 악화되자 그것에 기대어 딸을 구하려 합니다. 반면 이후 무속인을 다시 의심하며, 일본인을 직접 해치려는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 사이에서 등장하는 흰옷의 여인 역시 명확히 해석되지 않는 인물입니다. 이 모든 존재들은 각각 하나의 믿음을 대표하는 동시에, 종구의 내면을 반영하는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종구는 끝내 무엇도 확신하지 못한 채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은 결국 비극을 낳습니다. 이처럼 영화는 진실보다 믿음의 구조,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장르를 넘어선 인간 서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두려움
《곡성》은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스케일과 연출, 구성력을 가진 작품이지만, 그 핵심은 '보편적인 감정'에 있습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 내가 가장 아끼는 존재가 위협받을 때, 우리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선택이 옳은 선택일까? 영화는 이러한 물음을 던지면서, 관객을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함께 고통받는 존재'로 끌어들입니다. 종구의 실수와 절망, 분노는 모두 관객의 감정선과 교차하며,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잔상을 남깁니다.
특히 부성애라는 감정이 단순히 감정적인 장치로 그려지지 않고, 서사의 모든 요소를 관통하는 본질로 작동하는 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종구는 영웅이 아닙니다. 그는 실패하고, 의심하고, 후회하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선택들이 쌓여 결국 하나의 서사를 완성하며, 관객에게도 깊은 감정의 울림을 남깁니다.
절망 속에서 찾은 인간의 얼굴
《곡성》은 결코 친절한 영화가 아닙니다.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수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남긴 채 끝납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강렬한 감정을 느낍니다. 인간이란 본디 불완전한 존재이며,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비난받을 수 없는, 인간적인 고뇌와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감독은 종교와 공포, 심리와 인간관계를 교차시키며 '믿음'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완성해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라는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감정이 존재합니다. 《곡성》은 그 감정을 통해 관객 모두에게 묻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믿음을 선택하겠는가. 그리고 그 믿음이 무너질 때,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인가.
결국 이 영화는 단순한 장르영화를 넘어, 인간 내면의 어둠과 두려움을 정면으로 응시한 작품입니다. 《곡성》이 남긴 깊은 인상은 단지 이야기의 기묘함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감정의 진실성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부성애라는 테마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연약함을 꿰뚫으며, 누구에게나 통렬한 질문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우리 마음속에 오래도록 울림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