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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실이는 복도 많지 (2020) – 상실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따뜻하고 잔잔한 위로의 영화

by 머니소낙비 2025. 4. 25.

찬실이는 복도 많지

“하나씩 무너져도, 다시 살아지는 날들이 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삶의 중심이던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진짜 자신을 만나게 되는 한 여자의 일상을 담담하게 따라가는 작품입니다.

무엇이든 힘을 줘서 밀어붙이는 게 아닌,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영화. 이 영화는 상실, 혼자됨,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관계와 정서를 소중히 담아냅니다.

 

▶ 커리어도 가족도 사라진 어느 날의 현실

 

찬실은 영화 프로듀서입니다. 평생을 영화에 바쳐 살아왔고, 그 일이 곧 자신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일하던 감독이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일자리는 사라지고, 재정은 곤두박질치며, 돌볼 가족도 없이 외롭게 살아가게 됩니다.

 

찬실은 더 이상 영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누구”라고 불릴 만한 위치도 없습니다. 갑자기 시간은 너무 많아지고, 쓸모는 줄어든 듯 느껴지고, 그녀는 스스로의 인생이 ‘공허’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말합니다. 그 공허 속에서도 인생은 다시 피어난다고.

 

▶ 담백한 일상 속에 피어나는 관계의 온기

 

일자리를 잃은 찬실은 친구의 소개로 가사도우미 일을 하게 됩니다. 집주인은 소설가 지망생의 할머니. 말수는 적지만 사람에 대한 따뜻함이 배어 있는 이 노년의 여성과 찬실은 소소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조용한 우정을 만들어갑니다.

 

또한 찬실은 중국어를 가르치는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감정의 물결을 경험합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서툴지만 조금씩 다가가는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이란 이름보다는 서로를 알아가는 존재의 위로로 느껴집니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누구 하나 강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느슨한 연결이 오히려 더 오래 남는 여운을 줍니다. 삶에서 가장 따뜻한 관계는 오히려 그렇게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가오는 것임을 이 영화는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 혼자이지만 결코 쓸쓸하지 않은 삶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혼자라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혼자인 삶이 반드시 외롭고 쓸쓸하다는 고정관념을 부숩니다. 오히려 혼자 있기 때문에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고, 더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더 섬세하게 나 자신을 돌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찬실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산책합니다. 처음엔 초라하게 느껴지던 그 일상이,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씩 의미를 찾아갑니다.

그녀는 비로소 묻습니다. “나는 진짜 무엇을 좋아했지?”, “나는 왜 영화를 시작했을까?”,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을 통해 찬실은 진짜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 귀신도 등장하는데, 무섭지 않은 영화

 

이 영화에는 다소 엉뚱한 설정이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찬실에게만 보이는 귀신, 영화배우 김영민입니다.

그는 찬실의 상상 속에서 나타나 대화를 나누고, 그녀의 감정을 가볍게 풀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무서운 존재가 아닌, 삶의 공백을 함께 메워주는 은근한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이 환상적인 요소는 관객에게 ‘상실의 환각’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회복의 은유’로 작용합니다.

상실감이라는 건 실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한 방식으로 우리 마음을 움직입니다.

찬실이 귀신과 대화를 나누는 이 장면들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들며, 관객에게도 감정적으로 숨 쉴 틈을 제공합니다.

 

▶ “복이 많다”는 말, 진짜는 무엇일까?

 

영화의 제목처럼 찬실은 ‘복이 많은 사람’일까요?

겉으로 보기엔 그렇지 않습니다. 커리어도, 가족도, 확실한 미래도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그녀의 삶은 어찌 보면 잃은 것투성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는 ‘복’은 단순한 조건이나 소유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복은 누군가에게 작은 친절을 받고, 말 한 마디에 웃을 수 있고, 혼자서도 삶을 잘 견뎌내는 힘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진실을 찬실은 서서히 알아갑니다. 누군가의 딸이 아니어도, 누군가의 부하직원이 아니어도, 그녀는 혼자서도 ‘찬실’이라는 이름만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받아들입니다.

 

▶ 시대를 초월한 위로의 언어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코로나 초기 시기에 개봉하며 큰 상업적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많은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이별, 일자리 상실, 인간관계의 단절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2025년을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고 필요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단지 한 사람의 성장담이 아닙니다.

오늘도 ‘혼자’라는 단어에 무너질 것 같은 이들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어주는 영화,

“괜찮아, 너는 혼자지만 충분히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영화입니다.

 

결론: 당신도 복이 많습니다, 지금 이대로도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큰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저 조용하고 작은 일상의 순간들, 소박한 관계들, 혼자 있는 시간의 의미를 차곡차곡 쌓아올립니다.

그 속에서 관객은 웃고, 울고, 위로받습니다.

 

이 영화는 말합니다.

“복이란, 잃은 것보다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숨 쉬고 있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다면,

그리고 누군가를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웃어줄 수 있다면,

그건 이미 복 많은 삶입니다.